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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05

은행건축의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 대구은행

정림건축의 기본을 되새기다 - 3

1980년의 기록: 대구은행 본점 설계 설명서

《대구은행 본점 설계 설명서》는 1980년 6월에 만들어졌다. 이 설명서는 사용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도시와 건축물의 맥락적 프로세스에 대한 고민을 통해 오랜 시간이 흘러도 생명력 있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설계팀의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구은행 본점의 완성도를 높여 준 체계적인 프로세스 구축

대구은행 본점은 지상 19층, 연면적 33,000㎡ 이상의 규모이다. 100층 이상의 건물이 들어서고 여러 도시에 대규모 복합시설이 지어지고 있는 지금이라면 이 정도 규모의 건축물을 짓는 일은 별반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구은행 본점이 지어질 1980년대 초 지방에 이 정도의 대규모 건축물은 드물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설계를 진행하면서 겪었을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구은행 본점 설계 설명서》는 도면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기본설계의 전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대규모 건축물의 설계조건 및 분석방법 제시, 이성적으로 분석된 내용을 종합하여 대안 작성에 적용하고 비교분석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계획안을 선정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또한 대규모 건축물 작업을 위한 프로세스 구축과 건축주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여러 대안은 물론 대안 작성의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대구은행 본점 설계 설명서》는 크게 계획설계와 기본설계로 구분되어 있다. 계획설계 부분에는 설계의 목적 및 요소에서 시작해 최종안 선정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기본설계 부분에는 건축 및 구조, 기계, 전기설계는 물론이고 대규모 업무시설에 필요한 승강기 계획, 방재계획 및 주요자재, 예산계획까지 나온다. 지금이야 여느 설계 설명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대규모 건물이 흔하지 않던 1979년에 이처럼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다이어그램과 콘셉트 도면들은 30년 전에 작성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전달력이 높다. 프로젝트를 수행한 구성원들의 고뇌와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대구은행 본점은 설계 조건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프로젝트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했다.

 

 

도시구조의 변화를 예측하여 건물의 지속성을 고민하다

대구은행은 준공 후에도 용이한 유지관리로 건축물의 가치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대구은행의 경영철학을 반영하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시민들에게 친숙하고 사랑받는 은행을 고려한 설계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지속 가능한 건축물을 위한 시도는 도시민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조형에서부터 건축물의 친환경 요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대구은행 본점은 19층이라는 고층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줄이기 위해 도시 스케일과 휴먼스케일을 구분해 디자인했다. 타워와 포디움을 분절하는 사이 공간을 만들고, 타워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하부 매스를 사선으로 디자인하였다. 정제된 형태의 타워부는 도시 스케일을 고려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영업장의 포디움과 공공에게 열린 마당, 선큰가든, 담장, 필로티 등은 휴먼스케일을 고려해 친근한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이런 디자인은 당시 대구지역 경제의 중심축이었던 대구은행이 영업장을 방문하는 고객은 물론 지역사회의 주민들에게 친숙한 은행으로 다가가는 데 기여했다. 시민들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고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두어 건축물의 가치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둘째는 에너지 절약에 대한 고려이다. 친환경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필요성이 요구되는 오늘날에는 초기 디자인 단계부터 패시브 디자인 요소를 포함한 다양한 친환경 건축 요소를 적극 반영한다. 하지만 ‘친환경’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30년 전에 친환경 건축요소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은 모험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은행 본점은 초기 계획설계 단계부터 에너지 절약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했다. 대구은행 본점은 태양광을 고려한 코어의 배치와 밖으로 빠져 나가는 열을 최소화하고 내부와 외부의 자연스러운 공기 순환, 일사량을 고려한 적절한 차폐율 등을 적용했다. 에너지 절약에 대한 설계팀의 고민과 기계설비, 자재, 시공법 등 여러 부문의 요소들을 분석해 최적 방안을 찾아낸 사례이다.

 

 

더 나은 은행, 더 나은 공간에 대한 고민

한국외환은행 본점에서 시도된 새로운 유형의 은행건축과 사용자 중심의 공간 디자인은 대구은행 본점에서 더욱 완성된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대구은행 본점은 최초의 지역은행으로 대구 지역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공간이다. 위치 또한 대구 시내 중심으로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큰 곳이다. 이런 대구은행의 상징성과 대지 여건을 고려해 기본 조사 단계부터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요소와 사회적이고 상징적인 요소로 구분해 디자인 요소를 분석하고 건물 내부 조건과 외부 조건도 구분하는 등 체계적 프로세스를 구축하며 작업을 수행했다.

그 결과 건축물 사용자의 영역을 대구은행 관계자와 고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으로까지 확장하는 개념의 공간, 즉 대구 시민 누구나 접근 가능한 전면의 공용공간과 선큰가든을 추가하였다. 이는 시민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건축주의 의지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공간으로 구현한 건축가의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설계팀은 먼저 도로 여건, 주변 환경, 대지 내외부의 조건들을 꼼꼼히 분석해 배치에 반영했다. 또 외부공간은 진입구역(Access Zone), 은행 전용 정원(Private Garden), 선큰가든(Sunken Garden), 옥상정원(Roof Garden), 도로 공원(Street Park), 플라자(Plaza), 운동시설(Sport) 등으로 구분했다. 이렇게 각각의 공간마다 개성을 부여한 다양한 외부 공간을 두면서 각 공간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해 주어 대구은행을 찾는 사람들이 다양한 공감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타워부와 포디움 사이에 있는 옥상정원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건물과 외부공간의 결절점에 두 공간의 연속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소를 삽입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계획 당시 옥상정원은 은행 관계자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나 추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어 대구시민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었다.

 

대구은행 본점 역시 한국외환은행 본점처럼 포디움과 타워로 구분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대구은행 본점의 포디움과 타워의 연결부는 분리되어 있다. 두 매스가 일체화되어 권위적 형태로 보이는 것을 방지하고 이용자들이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이다. 타워매스의 저층부는 사선으로 처리해 공간 구성을 명확히 하고 대구은행의 상징성과 조형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담장, 저층부 필로티 등을 적극 활용해 고층형 대규모 건축물임에도 이용자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정림건축의 기본을 되새기다”, 《Junglim Architecture Works 2013》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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